2024년은 17년부터 7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맞이한 첫 번째 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등 지금까지 항상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처음으로 아무런 집단에 속해있지 않는다는 것에 불안감을 많이 느꼈다. 또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지금까지의 경험들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월별로 내가 그때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돌아보겠다.
1월
이전까지는 "졸업할 때 되면 어떻게 해서 잘 취업할 수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당장 졸업하고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눈앞에 닥치니까 큰 압박감이 느껴졌다. 머릿속으로는 지금이라도 빨리 경험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 보완해서 자기소개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의 나는 항상 내일로 미루고 문제를 일부러 외면하면서 유튜브, 게임으로 도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렇게 알면서도 외면하고 도피하는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자기소개서 작성을 미루다 지원 기간을 놓치는 것이 다반사였고, 결국 어찌어찌 완성해서 제출한 자기소개서들은 내용이 형편없었다. 이렇게 작년 하반기 취업에 실패하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굉장히 컸다.
그렇게 1월을 맞이했다. 취업활동에 필요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에 한 달 동안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첫날에 너무 못되게 구는 사람을 만나 힘들어서 그만뒀다. 큰 결심을 하고 일을 시작한 건데 하루 만에 그만둔 내 모습에 자신감이 더 떨어졌다. 그 이후에는 무기력증이 굉장히 심해져서 하루종일 누워서 유튜브만 보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보면서 아무런 재미도 안 느껴지고,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계속 봤다. 그러면서 수면 패턴도 망가져서 아침 6시까지 깨있다가 잠드는 날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민이 너무 많고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보는 동안 아무 생각 안 할 수 있는 유튜브로 일종의 도피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월
졸업식
친구 졸업식에 갔다 왔다. 이번에 안 입어보면 평생 입어볼 일 없을 것 같아서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빌려서 사진도 찍었다. 우리 학교 졸업식과도 날짜가 겹쳤는데, 우리 학교 졸업식에는 가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대학교에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형과라서, 코로나 시기라서, 내성적인 성격 등등 여러 이유가 생각나는데 그럼에도 서로 잘 어울려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그냥 내가 대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 것 같다. 대학교 생활에 대한 글도 나중에 작성해 봐야겠다.
2월에는 1월보다 기분이 많이 나아져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책도 읽고 일기도 써보면서 우울한 기분을 떨쳐보려고 노력했었다.
3월
3월은 본격적으로 상반기 채용 공고가 올라오는 시기이기에 열심히 지원서를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1,2월을 별다른 소득 없이 보내버렸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공고가 올라오면 마감에 쫓겨가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래도 작년 하반기처럼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자기소개서 작성도 못하는 상황을 다시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외면하고 유튜브나 게임으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열심히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4월
최초 서류 합격과 인적성
3월에는 세 회사에 서류를 제출했다. 공들여서 작성한 두 곳은 이미 불합격 발표가 났고, 마지막으로 제출한 sk하이닉스는 학벌을 많이 보기로 유명했다. 지방대 출신인 나로서는 붙을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에 대충 작성해서 제출했기 때문에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반기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4월 9일에 합격발표가 났다기에 확인해 보니 서류 합격이라고 쓰여있었다. 전혀 기대를 안 하고 있었기에 어안이 벙벙했고,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서류 합격 가지고 호들갑 떤다고 할 수도 있지만 계속되는 서류 탈락에 "내가 대학교에서 4년 동안 한 공부와 프로젝트들이 아무 쓸모없고, 회사에 전혀 어필이 되지 않는 건가?"라는 불안감이 컸기 때문에 합격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안도감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서류 다음단계는 skct라는 인적성 시험이었다. 미리 인적성 공부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작년에 gsat를 공부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일주일 만에 그만둔 경험이 전부였기 때문에 거의 처음부터 준비해야 했다. skct는 gsat와 다르게 손으로 쓰면서 풀 수 없고 컴퓨터 화면의 작은 계산기와 메모장만을 사용할 수 있어서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점은 나에게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인적성 문제들을 풀어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자료해석이었는데, 큰 수의 덧셈, 뺄셈, 곱셈, 분수의 대소비교 같은 단순 계산이 이상하리만큼 느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단순 계산을 계산기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험은 해커스와 에듀일 교재를 ebook으로 구매해서 실제 시험 환경과 비슷하게 컴퓨터 화면만 보고 푸는 식으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봉봉 TV라는 채널에서 판매하는 문제집도 유형별로 정리가 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시험 전 주 모의고사를 10개 정도 풀어본 결과 75개에서 80개 정도 맞출 수 있어서 합격권이라고 생각했다.
4월 28일, 인적성 시험날이었다. 시험 프로그램을 키니 감독하시는 분의 캠 화면이 보였다. "주말인데도 출근하시는구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긴장을 풀려고 다른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시험은 73개 정도 풀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준비한 것만큼은 풀었다고 생각했다. 합격 확정이라기에는 조금 아쉬운 점수였지만 그래도 뭔가 붙을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5월
면접 준비
5월 9일, 인적성 결과 발표날이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면접 날은 5월 22일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4월 28일 인적성 시험을 보고 바로 준비했어야 했는데 또 미루는 습관이 발동했기 때문에 늦게 시작하게 됐다. 인적성과 달리 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 면접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대입 때도 수시 전형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면접에 대한 두려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는 됐을 것 같다. 다른 이유로는 자공고라 내신 관리가 어려움,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생각이지만 "수시는 뭔가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있어. 정정당당한 정시로 승부하자!"라는 이상한 이유도 조금은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면접에 두려움을 가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지금 생각해도 민망할 정도로 이상하게 면접을 봤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교원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과학 영재 캠프 면접을 봤었는데, 무슨 질문을 해도 "해부요. 해부가 하고 싶어요. 해부가 좋아서요."같은 참 이상한 대답을 했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이때 내가 면접을 참 못 본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면접에서 이상한 대답을 할까 봐 면접이 약간 무서워졌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게 서투르기도 하고, 말이 느려서 답답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었기 때문에 더욱더 면접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중 학과 교수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전에 수업시간에 같은 회사 선배들과 연결해 줄 수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급한 마음에 밤늦게 메일로 연락을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바로 연락이 와서 당장 내일 학교로 와서 면담을 하자고 해주셨다. 면담을 하면서 직무 면접에 필요한 자료도 제공해 주시고,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인 선배와도 연결해 주셨다. 그리고 학교 취업센터에 꼭 가보라고 하셔서 갔는데 취업 상담사님께서 내 얘기를 듣고 일주일 동안 개인시간을 써가면서 면접 연습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교수님께서 연결해 주신 선배님께도 연락을 해 봤지만, 몇 마디 나누자마자 "직무가 달라 도움을 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며 딱 잘라 말씀하셨다. 이런 연락을 불편해하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인성 면접에 대한 질문 한 가지만 여쭤보았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못했다. 내가 간절하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내가 정말 간절해서 상대방이 불편해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연락을 했다면 그건 또 옳은 일인건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어찌어찌 면접 준비는 되고 있었지만 부담감이 점점 쌓여갔다. 복지도 좋고, 회사까지의 거리도 걸어서 10분 정도로 가깝고, 연봉도 업계 최상위였기 때문에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고, 그렇기에 불안감도 더 컸다. 이 불안함을 해결하기 위해 독서, 달리기, 바둑 같은 여러 가지 활동들 시도했다. 그중 달리기가 큰 도움이 된다고 느껴져서 매일매일 달리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면접
면접이 오전에 잡혀서 전날에 면접장소 근처 숙소에서 묵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마음을 다잡고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타는 장소에 도착했는데 사람들 모여있는 곳 건너편에 버스가 섰다. 출입문 내부이기도 하고 새벽시간이라 차가 없어서 그냥 건너도 될 것 같았지만 뭔가 책잡힐 일을 하기 싫다는 생각에 저 멀리 횡단보도를 사용하려고 돌아갔었다. 근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다들 똑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조금 재밌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해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대기하면서 주변을 구경했다. 면접자들을 위해 케이터링도 준비해 주고 큼지막한 회의실도 마련해 둔 것을 보니까 이 회사에 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리고 신기했던 건 생각보다 많이 떨리지 않았다. 아마 열심히 준비해서 그런 것 같았다. 인성면접을 먼저 보고 직무면접을 봤다. 근데 인성면접에서도 직무에 관한 내용만 물어봐서 직무면접 1, 직무면접 2처럼 느껴졌다. 인성면접은 예상한 것과 달라서 당황한 나머지 조금 아쉬웠지만 직무면접은 준비한 만큼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면접이 끝나고 셔틀버스를 타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회사 내부 도로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내 자리도 한자리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최종 결과 발표
면접 본 후 발표날까지 불안하고 긴장이 많이 돼서 새벽 6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낮에는 하루종일 밖에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빨리 발표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날은 6월 4일이었다. 그날도 역시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4시 30분쯤 전형 페이지에 뭔가 다른 점이 생겼고, 5시에 발표했다. 결과 확인하기 버튼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허탈해서 소파에 누워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다 잠시 잠들었다. 자다가 일어나니까 그래도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기대를 많이 했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하반기에는 취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실패 이력서
유튜브에서 실패이력서에 대한 영상을 봤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나도 작성해 봤다. 평소에도 내가 실패가 두려워 외면하고 회피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 번에 모아 보니 조금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도전해서 실패한 경험이 8번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패해도 좋으니 여러 가지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했다.
잘 못 할 것 같아서, 시간이 없어서 라는 핑계로 미뤄왔던 일들을 생각해 봤다. 머신러닝 공부, 글쓰기, 그림 그리기, 달리기(마라톤) 이렇게 네 가지가 떠올랐다. 이 네 가지는 하루에 5분이라도 꼭 하려고 했다.
이 중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것은 글쓰기와 달리기다. 평소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던 무언가를 글로 쓰면서 생각이 구체화되고 정리되는 것이 좋았고, 이전의 일상들을 기록해서 그때 당시 나의 기분이나 느낀 점 같은 것을 다시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기 때문에 글쓰기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달리기는 매일매일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 뿌듯했고, 하루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책을 보면서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달리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좋았다.
7월
7월 중순까지는 루틴을 잘 지키면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무너져버렸다. 최종 탈락한 반동이 늦게 온 건지, 아니면 원래 무언가 열심히 했던 경험이 없어서 한 달 만에 지쳐버린 건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다시 1월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유튜브만 보는 생활을 했다.
8월
8월도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지냈다. 이때는 일기도 쓰지 않아서 기록이 없는데, 단 하나 8월 9일에 쓴 일기가 있다. 내용은 "난 왜 이럴까"하고 자책하는 내용들이었다. 곧 하반기 공채인데 이러고 있는 모습에 조금 답답하고 불안해서 이런 일기를 썼었던 것 같다.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천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내니까 시간에 너무 빠르게 지나갔고, 9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9월
하반기 공채
또 아무런 준비 없이 공채 시즌을 맞았다. 한 달 동안 10군데 넘는 회사에 지원했지만, 자기소개서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는 조금 더 개선해서 작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7,8월을 낭비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 비슷하게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래도 3월에 서류 합격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몇 개는 붙을 거라 생각했다.
10월
하프마라톤
6월에 친구랑 같이 신청해 놨던 하프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달리기 연습을 많이 못 해서 조금 불안했지만, 일단 뛰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마라톤 행사장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주말 새벽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 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 신기했다. 몸을 풀다가 출발선에 섰는데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출발 후 대회가 주는 에너지 때문인지 초반부터 오버페이스를 해버렸다. 심박수가 170~180인데도 별로 힘들지 않아서 "이게 대회뽕이라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달렸다. 이렇게 평소보다 빠르게 달리니까 10km부터 점점 힘들어지다가 12km 지점부터는 거리가 안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15km부터는 다리가 말을 안 들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걷다가 뛰는 걸 반복하면서 마라톤 제한시간인 2시간 30분을 거의 다 채워서 2시간 28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완주한 후에 몸에 힘이 없어서 30분 동안 앉아있다가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솔직히 뿌듯한 느낌보다는 짜증이 먼저 났다. 연습을 안 한 나에게 짜증이 났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힘든 거 아니야?" 하며 짜증이 났다.
완주하고 달리기는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신기하게도 며칠 지나니까 또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친구와 얘기해 봤는데 친구도 그렇다고 했다. 내년에는 풀코스를 같이 나가자고 약속했다. 이번 대회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 대회에서는 덜 힘들게 달리기 위해서 미리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반기 공채 결과
10월 중순에 지원했던 회사들 중 마지막 회사의 서류 결과까지 발표됐다. 하반기에 지원한 회사는 모두 서류 탈락이었다. 내가 가진 경험이 그래도 회사에 어필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 탈락이라니 혼란스러웠다. 그냥 스펙이 부족한 건지, 자기소개서를 잘못 쓴 건지 계속 생각을 해보다가 일단 스펙을 키워보자고 생각했다.
11월
싸피 지원
어떻게 스펙을 키워볼까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를 A급으로 잘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B급으로 잘하는 것이 더 쉽고 경쟁력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이미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전공 관련 역량은 어떻게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빅데이터 분석 관련 프로젝트를 해 본 적도 있고, 내가 지원한 대부분의 회사에서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키우기로 했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중 싸피에서 데이터 분석 트랙이 신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싸피에 지원하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는 500자로 분량이 적었기 때문에 내가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왜 키우고 싶어 하는지 위 문단과 비슷하게 작성했다. 그리고 인적성은 gsat와 비슷한 유형의 수추리 20문제, CT(Computational Thinking) 25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이전에 공부한 경험이 있어서 수추리 19문제, CT 25문제 다 풀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합격권이라 생각해서 면접을 준비했다. 후기들을 찾아본 결과 내 역량을 보여주는 것보다 싸피가 필요한 이유, 열심히 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방향의 답변들을 준비했다.
공채 결과가 모두 나온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싸피를 준비하면서 해야 할 일이 다시 생기니까 무기력하지 않게 일상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12월
싸피 면접과 결과
면접 당일 잠이 안 와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계속 누워있어도 못 잘 것 같아서 면접 준비를 하다가 생각 정리를 하기 위해서 10km 정도 달리기를 하고 왔다. 뭔가 예감이 좋았다. 면접은 오후 5시여서 천천히 준비를 하고 오후 3시에 근처 카페에 도착해서 기다리다 면접을 보러 갔다. pt면접과 인성면접 합쳐서 15분 정도 봤는데, 긴장 안 하고 대답도 잘했다. 결과는 12월 19일에 발표했다. 또 불합격이었다. 인적성도 다 풀었고 면접도 잘 봐서 당연히 합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감이 컸다. 알고리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결과를 보자마자 누워서 잠이나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또 일상이 망가지기는 싫어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일단 싸피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이 깨졌으니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야 했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 생각해 보니 세 가지가 떠올랐다.
1. 자기소개서 소재 보완
대학교 시절 협업 경험이라고 해봐야 조별과제 경험 한 번밖에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협업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접관분들 눈에도 그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전 회사 면접, 이번 싸피 면접에서 모두 협업 경험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협업 경험을 어떻게든 보완해야 한다.
2. 스펙 보완
싸피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공부해서 경쟁력을 키우고 프로젝트 경험도 해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됐으니 혼자 공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터넷 강의로 공부를 한 다음에 kaggle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 오픽 성적이 IM1인데 외국계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IM3의 성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3월 전까지 오픽 IM3를 따는 것도 필요하다.
3. 면접 연습
면접에서 계속 탈락하는 걸 보니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개선할 점을 찾아야 한다.
일단 상반기 공채 전까지 위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준비하면서 보내기로 했다.
토익과 새로운 취미
싸피 면접을 준비하면서 토익 준비도 같이 했다. 원래는 면접 끝나고 준비하려고 했는데 또 미루다간 안 할 것 같아서 같이 하기로 했다. 두 가지를 같이 하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시간 관리를 좀 더 철저히 하니까 충분히 두 가지 다 할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능률이 오른 것 같았다. 그래서 백준에서 알고리즘 문제풀이도 같이 준비했다. 이전에 파이썬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어서 하루 만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졸업하고 한동안 머리를 안 쓰다 보니 알고리즘 문제를 풀면서 고민하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점점 재밌어져서 잠도 안 자고 하루에 10시간 넘게 알고리즘 문제풀이만 한 적도 있었다. 싸피 탈락한 후에는 열정이 약간 식었지만, 그래도 계속 취미로 이어가려고 한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게 되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로 오히려 일상에 활력이 돌고, 결과도 괜찮았다. 열심히 살 수록 관성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친구 결혼식
나는 지금까지 결혼식에 가본 적이 없다. 일부러 안 가려고 한 건 아닌데 그냥 가 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고등학교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결혼식장 주차장이 굉장히 컸는데 가득 차 있어서 친구 인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건물 안 각 층마다 결혼식장이 따로 있는 거였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니 좋은 날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표정이 밝아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분위기였다. 친구가 식을 올리는 층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이 많이 보였다. 졸업하고 몇 년간 못 봤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보니 반갑고, 다들 변한 게 거의 없어서 신기했다. 친구들과 안부인사를 하고 결혼하는 친구를 찾았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보여서 짧게만 인사했다.
식이 시작하고 진행되는 걸 보는데 되게 밝고, 신나고, 긍정적인 분위기여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가 벌써 결혼을 한다니 뭔가 흐뭇한 기분도 들었다. 중간에 신랑신부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부분에서 친구 아버지께서 친구를 꽉 안아주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30년 가까이 키우고, 한 가정에서 같이 살아왔던 자식이 자라서 새 가정을 꾸린다는 게 무슨 기분일지 궁금하면서 기분이 뭉클했다. 식이 마무리 되고 단체사진을 찍고 밥을 먹으러 갔다. 밥도 굉장히 맛있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받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하루였다.
결론
올해 얻은 것
- 글쓰기, 달리기, 알고리즘 문제 풀이라는 건강한 취미를 얻었다.
-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많이 하면서 이전보다 조금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 면접 경험을 해보며 면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 블로그에 처음으로 글을 작성해 봤다.
이전까지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마주치면 외면하고 피하며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어떻게 보면 인생을 굉장히 수동적으로 살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태도 때문에 인생에 스트레스받는 일 많이 없이 지내왔다. 그런데 취업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될 거라는 게 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남들보다 더 힘들어했다고 생각한다. 1년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이런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문제를 피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올해 가장 큰 변화이자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처음 글을 작성해 보았다. 이미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는 것뿐인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게 느껴졌고,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블로그를 작성해야겠다.